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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담아내는 달팽이 식당

2010. 2. 20. 12:01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달팽이 식당 - 8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북폴리오


  몇 년간 사귀었던 남자가 떠나 버렸다.  살림살이도 다 가져갖고, 둘이 모아 두었던 돈도 다 들고 날랐다.  그리고 목소리마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남겨진 것이라고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겨된장뿐이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십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엄마가 밭에다 숨겨놓은 돈을 찾으면 그걸 가지고 다른 도시로 떠날 생각이다.  그렇게 조용히 왔다가 갈려고 했더니, 하필이면 엄마가 키우는 돼지에게 들켰다.  그래서 연이어 엄마조차 그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면,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아닐까.  십 년간이나 서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고해도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는 그렇게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고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 있는...  물론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둘은 성향이 다른 것인지 맞지가 않는 모녀관계인데, 그럼에도 그녀가 결국 찾아간 곳은 엄마가 계신 고향이었다.  몰래 가서 돈만 훔쳐 오려고 했다지만 결국 엄마란 존재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은 끝까지 엄마를 외면하려고 했지만...

 

  미처 숨지 못한 채, 엄마에게 발견이 된 그녀, 엄마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엄마의 창고를 빌려 달팽이 식당이라는 것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달팽이 식당은 하루에 한 팀만 손님으로 받고, 지역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요리를 하며, 손님과의 면담이나 메일을 통해 무엇이 먹고싶은지 사연을 들어 메뉴를 정한다. 

 

  하루에 한 팀만을 받는 아담한 식당이라니, 마치 부자들이나 부리는 사치마냥 식당 하나를 통째로 빌린 기분이 들 것 같다.  식당 주방장은 오로지 그 하루의 한 팀의 손님만을 위해 요리를 해준다고 생각을 하니, 달팽이 식당의 손님은 매우 흡족한 기분이 들 것 같아, 나도 그런 식당에 가보고 싶어진다.  더군다나 달팽이 식당은 그곳에서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도 하늘하늘 피어오르고 있으니, 당장에라도 달팽이 식당으로 사연을 보내어 맛난 음식을 대접받고 싶다. 

 

  음식을 만드는 영화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맛난 요리의 향연들에 군침을 흘리면서 각인되던 영상들이었는데, 책으로 요리를 만나게 되니 이 역시도 입가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링고가 차려주는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 앞에, 소문처럼 사랑도 소망도 안 이루어질래야 안 이루어질 수 없을 듯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요리를 대하는 그녀의 정성이 깊다는 것이다.  정성이 담긴 요리는 사람을 감동시키게 마련이니 말이다.  실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링고는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감동시켜 음식을 먹게도 만들었고, 죽음의 저편으로 보낸 남편을 잊지 못해 상복만을 입었던 할머니에게 요리를 대접하여 상복을 벗게 만들기도 했으며, 짝사랑하던 어느 학생에게도 요리를 만들어 주어 그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주지 않았던가. 

 

  음식이란 먹는 재미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요리란 하는 재미 역시 큰 행복감을 나누어 준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뱃 속의 포만감만이 아니라 마음의 따스함마저 채워준다는 것을 말이다.  요리를 만드는 일은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정성으로 이루어내는 손끝 예술이 아닌가 싶다.  달팽이 식당의 링고를 보면서, 프로 요리사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볼 수 있었고, 요리란 서로와 서로를 잇는, 하여 사랑을 전하고 오해조차 불식시켜줄 수 있는 가교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링고, 십 년만에 찾아든 고향에서 소원해진 엄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던 요리사가 되어 달팽이 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게도 되었으며, 사랑과 소망을 이루어 주는 식당이라는 소문과 함께 장사는 잘 되었다.  처음에는 애인에게 돈도 잃고 사랑도 잃고, 결국 그 충격으로 목소리마저 잃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이 순간 만나게 된 링고는 임시 휴업을 했던 달팽이 식당을 다시 연다.  책의 끝말에 새겨진 글처럼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따스함을 담아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행복해지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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