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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2009. 8. 17. 12:11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어린시절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라는 시를 노트에 끄적여 놓으며, 마음으로 새겨놓던 기억을 이 시집에서 되살리고 있다.  김용택 시인이 다른 시인들에게서 담아내었고, 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들을 엮어서 시집으로 내놓았다.  삶을 살아가면서 숱한 질문들을 가지게 되고, 그 해답을 알기위해 안절부절 허둥대고는 하는 우리들, 이 시집 속의 시들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온유함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위안을 얻게 되면, 답을 알게 되면 마음이 순식간에 평화스러워지듯이 그렇게 말이다.

 

  생각이 곧 말이 되기때문에 조심하고, 말이 행동이 되기에 조심하여야 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며, 성격은 곧 운명이 된다는 작자 미상의 시를 읽을면서 삶이라는 것이 쉽게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 그 얼마나 진지한 것이며,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언젠가 너무나 큰 시련 앞에서 울부짖으며, 그 시련이 사라져지길 기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타고르라는 위대한 이 시인의 기도라는 시를 읽으면서 시련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어 이겨내어야 한다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라는 시에서는 진정 그 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불행해지는 두 가지 방법에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모두 갖는 것에 있다는 그 심오한 말에 말이다...

 

  니체가 들려주는 값진 삶을 사는 방법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하다.  오늘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값진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하니 말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언제나 진리는 단순한 것에서 있고, 비워내는 것에서 있으며, 기뻐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것,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오는 것인데도 말이다.  언제나 하늘의 별처럼 멀고 먼 곳에만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깨달음들을 주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몇 몇 시들은 어린시절처럼 노트에다 깊게 깊게 끄적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절하게 와닿는 유트족의 글귀를 적어본다.

 

하나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나는 추종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41쪽-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 10점
김용택 엮음/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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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와 만다라

2009. 7. 22. 22:26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메기와 만다라 - 8점
앤드류 팸 지음, 김미량 옮김/미다스북스
앤은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고국인 베트남을 떠나고 미국에서 정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베트남 전쟁때문이었다.  어린시절,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났던 베트남을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힘겹게 탈출했던 앤의 가족들은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곳, 미국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그들 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그들은 차별받는 황인종 취급을 당해야했던 것이다.  앤은 미국에서 막 생활을 시작하던 유년시절, 등교한 학교에서 집단 몰매를 당하기도 하고, 자전거 여행을 하던 와중에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적 모욕을 당하게 된다.  그는 미국을 국적으로 살아가지만 온전한 미국인일 수 없었고, 백인들 무리 속에 피부색이 다른 황인종인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하여,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베트남, 자신의 뿌리가 되는 그곳을 향해 나를 찾아가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청년 앤은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친척들을 만나고, 자전거 여행으로 자신이 태어난 곳, 그가 계획하는 종착지인 판팃까지 가는 여정이 과거 베트남을 탈출하던 기억들과 교차되면서 쓰여져 있다.  베트남은 그의 조국이다.  그러나 미국 교포가 되어 다시 돌아온 베트남은 그를 자신들의 온전한 동포로 대하고 있지 않다.  베트남인들은 오히려 그를 미국인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그를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인이 아닌 동양인으로 바라보면서 차별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앤은 그렇게 미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정체성 혼란의 그 중심에 서 있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싶어 떠나온 여행에서 정체성 혼란의 그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긴 무엇인가의 답을 구하고 싶다면, 가장자리가 아닌 그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다란 생각이 들기는 하다. 

 

[목적의 완성.  결국, 그게 전부이지/499쪽] 여행을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우리들은 쉬이 착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여행이란 도구로의 작용을 할 뿐이지 언제나 해답은 자신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긴긴 여행으로 에둘러 와봐야, 결국 해답은 자신 안에서 찾아지게 마련이다.  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자신이 태어났던 베트남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미국임을 알게 된다. 

 

  청년 앤의 자아 찾기를 위한 조국 베트남으로의 자전거 여행이 이야기이지만, 실은 동양적 사고 속의 베트남인들이었던 앤의 가족이 서구적 사고인 미국 안에서 새로이 뿌리내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부모와 자식간과 베트남과 미국과의 문화적 혼란이 빚어내는 슬픔과 아픔이 베어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들 교육을 매로 다스렸던 앤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앤의 누이 치를 그렇게 매로 다스리다가 경찰들에게 잡혀가게 된다.  그 일은 앤의 가족들에게 큰 아픔의 상처를 깊게 새기는 사건의 원인이 되고, 그 화해의 모색을 찾아 떠나게 되는 앤의 여행이기도 하다.  조국 베트남보다 더 살기 좋은 미국, 그 미국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앤의 가족,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앤만이 아닌 것 같다.  앤의 형제들 모두가 혼란 속에 던져져 있었고, 결국 그들의 현실은 그것의 결과론들을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앤이 베트남에서 만났던 캘빈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이라고 믿으면 베트남 사람이라고....

난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결국 앤 역시 그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베트남 사람인 것이고, 그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미국인일 것이다.  그가 마지막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을 선택하지 않던가.  결국 그가 사는 곳이 그의 뿌리가 되고, 그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곳이다.  태어난 곳이나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다.  결국 혼란 속에서 앤의 형제들이 선택했던 모습들도, 앤의 아버지가 후회하며 깨달은 것도 결국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그들의 뿌리가 될 곳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무처럼 그렇게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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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

2009. 7. 14. 00:37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헤세의 인생 - 10점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그책
나에게서 헤르만 헤세는 누구나처럼 <데미안>을 통해 알게되는 작가였다.  누구나처럼 청소년시절이 되면 꼭, 만나게 되는 작가이기도 한 헤르만 헤세, 나는 그를 친구를 통해 만났다.  나에게 데미안같던 친구를 통해서........

 

  나에게서 헤르만 헤세는 알에서 깨어나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가던 새처럼, 그에게로 향하는 삶이다.  헤르만 헤세를 통해 삶을 깨닫고, 헤세를 통해 나의 날개짓을 향해야 하는 길을 알게 되었다.  헤세는 나에게 책 <데미안>으로만 소개되어진 것이 아니라 책 속의 데미안을 세상 속으로 튀어나오게 해서 만나게 해준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헤르만 헤세는 내게서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는 작가라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헤세이기에 그의 이름이 달린 이 제목의 책은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 

 

  <헤세의 인생>이란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헤세의 전집을 편집한 경험이 있는 폴커 미헬스가 헤세의 소설이나 헤세의 시, 헤세의 메모들과 헤세의 편지들 등 헤세가 남긴 글들 중에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들만을 모아 엮은 것이다.  헤세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그 이야기를 지금의 우리들이 함께 귀담아 듣는다면 정신의 성장과 삶의 혜안을 깊이 있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여 헤세의 영원한 친구들인 청소년들에게도, 또한 그 시기를 거친 어른들에게도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평소 검은 볼펜으로 그어대던 글귀들을 이번에는 파란 볼펜으로 긋기 위해 옆에 두었다.  그만큼 헤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심장 깊이 새겨넣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가능한 것이 생기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불가능한 것이 시도되어야 합니다/17쪽]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고 외쳐대었던 나폴레옹도 있지만, 우리들은 불가능한 것 앞에 쉬이 무릎을 꿇게되고 만다.  불가능한 일을 시도할 시간에 가능한 일들부터 해내는 것이 오히려 더 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한계에 맞서게 하는 일이기에 더욱 힘든 싸움이기도 함이다.  하지만 헤세의 말을 들어보니 진정 가능한 일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헤쳐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깨닫게 된다. 

 

[위험이 없는 길로는 약한 사람들만을 보낸다/26쪽] 헤세가 쓴 <유리알 유희>란 책에 나오는 글귀다.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어서 아직도 늘 기억 속에 맴도는 장면들이 있다.  여하튼 이 책 속에 나오는 이 글귀는 고난이 많은 길 속에서 상처진 발바닥을 가지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된다.  하나님도 더 사랑하는 이에게 강하게 만들기 위해 고난을 감내하게 하신다고 하지 않던가.  약한 사람들만이 화초처럼 편하게 살 뿐이다. 

 

[고독은 운명이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기 위해 거치게 하는 길이다/56쪽] 모두가 고독을 두려워한다.  결국 홀로서기가 인생임에도 우리들은 고독이 두렵다.  하지만 헤세의 말처럼 고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되살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고독의 그 밑바닥까지 닿게되면 고독은 결국 친구가 된다.

 

[내게는 언제나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단 그것들이 내게 이해되는 한에서는, 똑같이 가치 있고 특이했습니다./67쪽] 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에 똑같은 가치로움으로 대하면서 살아오지 못 했다.  매 순간의 기적과 같은 가치들을 인식하지 못 한채,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것들이 얼마나 숱하던가.  모든 사물과 현상들에 가치로움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삶의 경이로움을 볼 줄 안다는 것일게고, 그것은 곧 매순간의 삶이 행복임을 느낀다는 것이 아닐까.  소중함을 소중함으로 볼 줄 아는 헤세, 그에게 또 하나를 배우게 된다.

 

  헤세가 바라보는, 생각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언제나처럼 그에게서 배우게 됨을 알게된다.  그는 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만들어주는 위대한 작가이다.  청소년시기 누구나 헤세를 만나게 된다.  아니 만나야 한다.  그가 가르쳐주는 삶에 대해 들어야 한다.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성장되듯이 영혼의 자라남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이 얇은 책 속에는 헤세가 말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얇지만 깊이를 안겨주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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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2009. 7. 10. 17:22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산티아고, 많은 사람들이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통해 알고 있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지도 못 하였고, 전혀 알고 있지도 않았었다.  산티아고는 그렇게 나에게 무척이나 생소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 산티아고가 낯설음이 아닌 구면이 되어 알 수 없는 친근함으로 다가온 것은 서명숙 작가님의 강연회를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그녀가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온 이후에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 산티아고라는 이름에서 낭만적인 멋스러움이 은근히 느껴지고, 그곳에서라면 그 길 위에서라면 인생의 무언가를 얻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던 산티아고라는 이름이었기에 이 책[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란 제목이 주는 반가움은 컸다.

 

  스페인 북서쪽의 작은 도시 산티아고로 걸어가기 위해서 저자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혼자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했다.  혼자있고 싶어서라는 그 마음에 나 역시 덧보태면서 그 걷기여행을 동행한다.  혼자이기 위해서 굳이 산티아고의 순례길이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 역시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혼자 걷기위해서 그곳으로 향하는 것 같다.  나도 그녀도 그렇다고 막연히 느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혼자서 걷는 길이 아니었다.  마냥 혼자서만 지평선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는 걸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 위에는 그녀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들은 제목처럼 혼자 걸으면서 또 함께 걸어가는 것이었다.  같은 속도로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동행자가 되었고, 함께 숙소인 알베르게에 머물기도 한다.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 걷고싶었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함께한 산티아고 순례자들인 마틴이 있었고, 산드라가 있었고, 마농 아줌마가 있었으며, 조와 조지 할아버지가 그리고 애런이 있었다.  그렇게 그 길 위에서 그녀는 숱한 사람들과 혼자가 아닌 함께 걷고,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그녀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동행하면서 그녀가 변화한 것만큼 나 역시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진솔한 순례길의 이야기는 그녀에게만 변화의 시작점을 마련해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그 길은 변화를 위한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물론 그녀도 말하고 있지만 그 한번의 여행으로 삶이 송두리 변화하고 성장해있지는 못 하고 있지만 그 시작의 소리는 발견되고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여행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동화되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은 그곳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으로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온 산티아고의 순례길, 하루 종일 걸어서 걸어서 당도하게 되는 허름하고 지저분한 알베르게였지만 그곳에서 땀과 발냄새에 절은 함께 걷는 순례자들을 만나면서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같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물집이 날만큼, 무릎이 아플만큼 걸어본 적은 없다.  산티아고를 가기 위한 그 길은 오로지 걸어서 가는 길이다.  혼자 걷는 길 같지만 실은 함께 걷는 길이기도 하다.  그들이 모두 같은 곳인 산티아고를 향하고 있기에 말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한 것 같다.  혼자 걷는 것 같지만 실상 함께 걸어가는 이들 속에 있는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는 아니지만 같은 곳을 향해가는 것이 아닐까. 

 

[인상적인 구절]

어느 책에서 읽었던 하와이 원주민들의 말을 응급처방처럼 떠올리려고 애썼다.  인생을 파도라고 생각하라고.  파도가 자신이 바다의 일부분이라는 걸 모른다면 바위에 부딪혀 깨질까 봐 두렵고, 앞서 바위에 부딪혀 사라져버린 다른 파도의 죽음을 슬퍼할 테지만 바다의 일부분임을 깨닫는다면 슬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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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2009. 7. 9. 00:10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 8점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바오밥

  누구도 기소없이 투옥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 그녀는 자신의 그 믿음을 말하고자 악명높은 관타나모로 향했다.  관타나모, 사실 그곳에 대해서 그다지 알고 있지 않다.  옛적에 본 영화 [어 퓨 굿 맨]의 배경이 되는 곳이 쿠바의 관타나모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관타나모, 그곳의 무슨 이야기들이 있길래, 여자인 저자가 그곳까지 간 것일까.  그냥 그것이 궁금했을 뿐이다.  무슨 거창한 의식을 가지고 선택한 책이라기보다는...

 

  무슨 이유로 그곳으로 끌려와서 투옥되어 있는 것인지, 무슨 이유로 그곳으로 끌려와서 폭행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언제 풀려나게 되는 것인지 처음에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수감자인 자신들을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에 동조하는 테러범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결백을 주장하고싶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마냥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결백할지도 모르는 억울하게 갇히게 된 수감자들이 있다면 공정한 재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고 있다. 

 

  9.11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조직원을 신고하면 엄청난 현상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현상금에 눈이 멀어 많은 아프가니스탄인이 팔려 관타나모로 보내졌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업가 왈리는 돈을 빌려주었던 동업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다가 그의 신고로 관타나모에 끌려갔다.  테러범이 아님에도 돈을 갚기 싫었던 동업자는 그를 거짓 신고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재판을 통해 왈리가 결백하다는 것을 확인했어야 함에도 미군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채, 세월을 쌓아간 것이다.  저자는 그 왈리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를 위해 재판 준비를 하였다.  이 책에는 왈리 외에도 염소치기 타즈나 무소비 등 결백한 사람들 그래서 억울하게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이 관타나모에서 몇 년씩 갇혀지내면서 당한 고문과 폭력들의 억울한 세월의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진짜 테러범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현상금에 팔려 관타나모에 끌려온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프가니스탄인이라고 모두가 테러범인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미국의 법은 인권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믿었지만 바로 그 미국의 법은 관타나모의 억울한 사람들의 인권은 저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렇게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결국, 타즈도 무소비도 결백하다하여 석방되지 않는가. 

 

  세상에는 참 억울한 사람들도 많다.  쿠바의 관타나모, 그곳에도 억울함은 있었고, 그 억울함은 인권유린 속에 참혹히 짓밟히고 있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그 기치 아래 관타나모는 검은 얼룩을 보이고 있다.  관타나모의 이야기, 이 책을 통해 그 얼룩들이 지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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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쇼

2009. 5. 31. 12:25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라디오 쇼 - 8점
제이 엘리슨 지음, 댄 게디먼 엮음, 윤미연 옮김/세종서적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무엇인가의 믿음으로 그것들을 채워가고 있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삶의 모습들이 달라지는 듯 하는데, 이 책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믿으면서 인생을 담아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내가 믿는 이것>이라는 라디오쇼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색상의 신념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취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때의 내용들을 다시 엮은 것으로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삶을 행동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빌 게이츠라는 유명인에서 15년 동안 전화번호부의 광고 영업을 해온 필리스 앨런같은 평범한 이웃의 신념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기록되어져 있다. 

 

  현재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데어드르 설리번은 장례식은 꼭 가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자신이 하기싫은 일일지라도 인간의 도리는 꼭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그 믿음을 실천했다는 그녀의 믿음에 수긍의 고개짓을 끄덕이게 된다.  진리를 믿는다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에롤 모리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절대 버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거짓과 모략이 난무하는 세상살이이지만 그렇다고 진리와 진실이 가려진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변하지 않는 진리와 진심이 담긴 진실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빛처럼 그 빛은 드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정치인 마크 실즈, 비열하고 부정부패의 온상같은 정치세계에서도 정직한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상, 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정치를 믿는다고 한다.  그의 믿음들이 행동으로 지속히 나타나고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진다면 국민들이 편안한 정치를 만날 수 있는 날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고 나 역시 믿어본다. 

 

  관제요원으로 활동하는 메리 쿡, 마음의 문을 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 무한한 힘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은 채, 자신의 힘을 믿는 일은 삶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일들 앞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일은 곧 세상과 인생을 바꾸는 일이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는 재키 랜트리, 사랑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갖은 학대와 구타에 멍울진 아이의 마음도 사랑의 힘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그녀는 입양을 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도 한다. 

 

  무엇을 믿으면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면서 이 책 속의 그들의 신념과 나의 신념이 같은 색으로 만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의 힘을 믿고, 정치의 희망적 모습들을 믿고, 진리를 믿고, 평등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을 믿는다.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그 통증에 힘겨워질 때도 있지만 사람때문에 다시 그 상처들이 아물어간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선하다는 것을 믿는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준다.  "당신이 믿는 것은 무엇인가요? "  그 믿음에 이야기로 수다스러워져 보자.

 

[인상적인 구절]

우리는 주어지는 건 뭐든지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를 갖고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주어진 걸 상대하는 겁니다./엘리노어 루스벨트

                                                                            -151쪽-

 

내가 나 자신에게 올바른 생각을 들려줄 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최고의 것을 창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그들 역시 최고의 것을 창조하게끔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그렉 채프먼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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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잡영

2009. 5. 13. 10:32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퇴계잡영 - 10점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연암서가


  [훌륭한 바탕을 가지고도 오히려 어렵네, 뉘우침과 화 없이 하기란,,,,]이는 우리가 퇴계라고 부르는 이황 선생님의 <동재에서 일을 느끼다>라는 한시의 일부이다.  아무리 훌륭한 바탕을 가지고도 뉘우침없이는 삶을 살기가 어렵운데, 하물며 하찮은 자신은 벼랑 끝에 선 듯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 벼슬을 물리치고 토계라는 마을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라고 지었는데, 이 책은 이황 선생님이 토계마을에서 지은 시들을 모아 이장우. 장세후 씨가 함께 번역하고 주석과 해설을 담은 것으로 <퇴계잡영>이란 제목으로 출판사 연암서가에서 내어놓았다.

 

  사실, 우리의 선조들이 적은 시나 글들을 자주 접해보지 않았다.  우선은 어렵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시대적인 정서적 코드가 다르지 않나 싶어, 와닿는 감성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의 나라의 고전 시나 글들은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우리네 글과 시는 등한시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은 아닌데~'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던 중에 퇴계 선생님이 적으신 시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의 책이 나왔다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내뻗게 된 것이다.

 

  <퇴계잡영>이란 제목에서의 잡영이란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 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잡시라는 것도 있는데, "이러저라한 흥취가 생겨날 때, 특정한 내용이나 체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시"를 말한다고 머릿말에서 밝히고 있다.  즉, 이 책은 퇴계 선생님이 벼슬을 내어놓고 토계[퇴계]마을로 와서 그날 그날이 안겨주는 풍경과 일상들 속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시들을 적은 책인 것이다.  하여, 강가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그 편안함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시들인 것이다. 

 

  역시 문장가였음을 알 수 있듯이 즉흥시임에도 그 싯귀 하나 하나가 참으로 멋스럽다.  이 책은 퇴계 선생님의 한시 원문과 그 번역본 및 해설과 주석까지 현대의 독자들이 이황 선생님을 만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소개시켜주고 있다.  너무나 오랜 옛 분이라 만나기 부담스러웠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황 선생님의 좀 더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들어오고, 화폐 속의 그림으로만 만나오던 이황 선생님, 그분의 글을 맘껏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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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토르소맨

2009. 5. 8. 23:13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더스틴이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전미 청소년 레슬링 대회 오하이오 주 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  운동선수로 활약하며 살아간다는 일은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비장애우들에게도 힘든 일이렸만 어떻게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장애우가 그것도 주 대표 선발전에 출전할 정도의 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일까.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만 느껴지는 감동이다.  하지만 이 책 <꿈꾸는 토르소맨>을 읽는 우리들은 그것이 기적이 아닌 한 사람의 인내와 노력이었음을 그러하기에 전해지는 감동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그가 이루어낸 삶이었던 것이다.

 

  다섯 살 더스틴을 찍은 비디오에는 신나게 뜀박질하는 양다리가 있고, 양 팔을 뻗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여섯 살이 되기도 전에 수막구균혈증으로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해야하는 수술을 받게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몰랐다.  당시 부모님은 더스틴이 살아만 있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정도로 다만 더스틴이 그들 곁에만 있어줄 수 있기를 오로지 그 사실만을 생각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더스틴이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들 앞에 놓여진 삶은 이전과는 180도 달라지게 된다. 

 

  다섯 살 더스틴이 자신의 모습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일과 가족들이 그런 더스틴을 대해야 하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식을 오로지 도와주고, 동정하면서 '오냐오냐' 키울 것인지, 혼자서도 오롯이 살아갈 수 있도록 평범하고 엄하게 키울 것인지 판단하기도 실천하기도 힘든 일일 것이기에 말이다.  더스틴의 부모님은 더스틴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슴 아프고 힘든 결단이었지만 넘어지는 자식을 일으켜세워주기보다는, 혼자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신 것이다.  

 

  화장실을 혼자서 가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줄무늬 노트에 글씨를 적을 수도 있다.  수영도 하고, 레슬링도 하는 양팔과 양다리는 없지만 비장애우들인 우리들처럼 평범한 모든 일상들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혼자서 하기까지 많은 시간들이 걸렸지만 하긴 이 책에서 언급되어있듯이 우리들 역시 갓난아기에서 걸음마와 말을 배우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지 않던가. 

 

  특히 사랑스러웠던 것은 더스틴과 그의 여자친구 메리디스와의 모습에서였다.   메리디스는 레슬링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었고, 아버지와 오빠가 레슬링을 하고도 있다.  그러하기에 더스틴의 레슬링 경기를 본 적이 있었고, 그에게 반하여 먼저 고백하며 다가섰다고 한다.  둘은 레슬링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메리디스는 더스틴의 외형적 모습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며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응원의 박수를 열렬히 치게 되었다. 

 

  나는 표지의 더스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가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책 속의 그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음에도 레슬링 선수로 살아간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제는 그의 지금의 모습이 기적이라고 쉽게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그의 노력과 인내로 이루어낸 결실의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불행 속에 느닷없이 갑자기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그가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해야하는 불운한 운명을 어린시절부터 살게되었지만 그는 그 삶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면서 살아간다.  그가 듣기 좋아한다는 그 말 "더스틴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더스틴답다는 말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아 바로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인 것이다..더스틴다운~

 

  그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었지만 단지 신체적인 불편함을 지녔을 뿐 평범한 우리들과 같았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인식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가 양팔과 양다리가 없다는 것으로 연민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한 번, 눈물을 삼키며 아파한 부분이 있었다.  다섯 살때부터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하여 피부를 이식시킨 더스틴이었기에 성장하는 뼈와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였다.  성장하는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오려고 하기때문에 그 뼈를 깎기위해 피부를 다시 벌려 뼈를 자르는 수술을 받아야했고 그 횟수가 서른 번이 된다고 했다.  성장하는 뼈를 자르는 수술을 매번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고통이 상상되어져 맘이 너무도 아파왔다.  다섯 살 그때 한번의 절단이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난,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계속 뼈 역시도 성장하며 자라는 것이란 걸, 미처 생각하지 못 하였기에 그가 매번 수술을 받고 다시 그 상처가 아물때까지 아픈 며칠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이 무척 맘이 아릿하게 다가왔다. 

 

  인간 승리의 이야기, 그러하기에 당연히 감동적인 책이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불편한 몸을 가진 더스틴이었지만, 레슬러로 활약하고 있으며, 코치가 되고싶다는 꿈을 가지고도 있는 밝은 청년이다.  자신의 환경과 운명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더스틴, 분명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쉬이 엄살을 부리고 투정을 부리며 주저앉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개구진 그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가득하다.  언제나 그렇게 긍정적인 더스틴, 그가 사랑스럽다.

 

[인상적인 구절]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아직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그가 포기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60쪽-

 

"-생략- 더스틴이 저렇게 움직이는 건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장애는 단지 몸이 불편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일뿐이거든요."

                                                                -61쪽-

 

그 모두가 거듭된 실패 끝에 얻은 귀중한 결과들이었다.  수천 번, 수만 번 매트 위에 내동댕이쳐진 끝에 정당하게 얻은 승리의 열매였다.

                                                                -93쪽-

 

"더스틴은 장애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보여줄 거예요."

                                                                -164쪽-

 

세상을 구성하는 다수 또는 소수 모두 서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일반인이나 장애인이나 삶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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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은 없다.

2009. 4. 20. 18:38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약산은 없다 - 8점
김서령 외 41인 지음/에세이스트

  내용에 형식이나 제한이 없는 장르가 수필이고, 그러하기에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수필이라고 여겨져 왔다.   소설보다는 밍숭하고, 시보다는 덜 감성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소설보다도 시보다도 덜 읽어왔던 것 같다.  그런 수필을 오랜만에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애틋하게 수필에 대한 사랑이 계절타며 생겨난 것은 아니고, 생각해보니 일상이란 것의 조각 조각들이 모여져 삶이 되고, 그 삶이 곧 소설처럼 시처럼 완성되어진다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렸기 때문이다.  일상의 소소한 감성들을 새겨내지 못 하면서 어떻게 큰 바닷길로의 항해를 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수필은 바로 그런 일상의 소소함의 내음을 가슴으로 담아내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용의 형식이나 제한의 구애됨이 없기에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처럼 여겨지지만, 일상의 소소함에조차 살가운 눈길을 주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수필이 그리 쉬운 문학의 영역은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상의 살가운 이야기들, 그것을 토해내는 시간, 이 책은 2008년에 [에세이스트]지에 발표되었던 300여편의 글들 중에서 수필작가들이 '2008년을 대표하는 수필'로 직접 가려 뽑아담은 작품집이다.   김서령씨의 <약산은 없다>를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수필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화련씨의 <바랭이 월척>이란 수필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시절의 하루들이 물결처럼 디밀려 들어왔다.   바랭이가 어떻게 생긴 여름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어린시절 집에서 키우던 토끼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들판을 엉기엉기 다니면서 삐죽삐죽 생긴 토끼풀을 고사리 손 가득히 꺽어다 주었던 적이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세월을 먹으며 늙어버리신 엄마가 아닌 어린 기억 속의 젊은 엄마와 함께 갓 돋아난듯이 보이는 작고 부드러운 쑥을 캐어다니며, 이제는 토끼가 아닌 나의 허기져 홀쭉해진 배를 불퉁히 채워줄 쑥 한 바구니를 담아내던 적도 있었다. 

   전해주씨의 <피아노>의 수필을 읽으면서도 나의 추억은 봄바람에 스치듯 살포시 떨림을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는 없지만 친구의 집에는 있던 까만 피아노.  학교 음악시험에 피아노치는 것이 있었지만 피아노가 없던 나는 종이에 삐투름하게 그려놓은 까만건반과 하얀건반으로 연습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집에 초대되어 갔더니 그곳에 까만 피아노가 있었다.  그것으로 나도 연습을 하고 싶었지만 매번 친구집에 피아노때문에 놀러갈 수는 없었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뒤늦게 친한척 행동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의 수필들을 읽으면서 잊혀졌던 기억들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만나기도 했으며, 일상의 소소함들을 문학이라는 영역 속에 담그어 그 편안한 휴식의 그늘을 느끼게도 되었다.  삶의 소소함들이 내어주는 향기를 담은 수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러하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 살가움에 절로 미소를 짓게되는 순간인 것같다.  수필은 이래서 좋은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가.  발전을 위한 전제가 아니고 착오 그 자체로써 고뇌를 종용한다.  언제나 훈련병답게 착오와 착각 속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진다.  까닭도 모를 일에 어느덧 휩쓸려 같이 흥분하고 싸우고 한숨짓고 눈물 쥐어짠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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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인생이야기

2009. 4. 18. 22:36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8점
펄 벅 지음, 하지연 옮김/눈과마음(스쿨타운)


   펄 벅이라는 이름은 대지라는 유명 책의 제목으로 낯설지 않다.  그녀의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그녀의 이름까지 모르지는 않는다.  여하튼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하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그냥 작가의 이름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일을 결정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이유들 중, 가장 흔한 이유거리가 되는 작가의 이름 말이다.  헌데, 저자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들어본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선택한다니 너무 어설픈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프로적인 책읽기를 하는 독자가 아닌 아마츄어라서 그렇다고 무던하게 넘어가주면 좋겠다.  하나의 이유라도 생겨나 있다면 그것에 올인한다는 것이 굳이 나빠보이진 않는다.  이러저러하든 나는 펄 벅이라는 저자의 이름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오로지 그녀의 이름 하나에만 온 손끝의 힘을 모아쥔 것이다.

 

  중국에서 15세까지 살았던 그녀이기에서 인가.  중국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많은 예로 들면서 이 책을 적어내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딸들에게 그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해주어야 할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지 않겠는가.  어머니와 딸의 사이라는 것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 있으니 말이다.  결국 딸은 어머니의 입장이 될 존재들이기에 이미 어머니인 자리에 올라선 그녀, 딸에게 해주고싶은 말들도 어지간히 많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당신의 딸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세계의 모든 딸들에게도 그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고이 두 손 모으고 그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딸아, 결혼은 이렇게 해라, 사랑은 이렇게 해라 등,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지금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어느 여성이 아기를 임신하여 저자에게 상담을 하려고 왔다.  하지만 그 여성은 아이의 아빠를 사랑은 하지만 결혼을 하고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펄 벅은 그 여성에게 아이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선택하는 일은 옳지 못 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결혼이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교육에 대해서도 굳세게 말하고 있다.  여성이라고 오로지 가정에 안주하여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교육을 받아, 사회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그 능력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그렇게 남녀가 평등하게 교육받고 책임을 나눠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책임없는 혼전임신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는데, 사랑이나 결혼 모두에 신중한 모습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훗날 당신도 당신의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지혜들이 있지 않겠는가.  펄 벅처럼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이다..

 

[너희 두 사람이 늘 함께 있기를 바란다.  혼자 앞서 가게 한다든지 뒤처지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너희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한 언제나 함께 있도록 해.  손을 맞잡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내디디며 함께 가도록 하렴.  그러면 너는 영원히 고독하지 않을 거야./118쪽]

 

[여성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약한 이음새가 될 것이다.  가정에 충실을 기하는 만큼 가정 밖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의 세계를 나누어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한 혜안이 없다면, 여성들은 바로 그런 나약함과 무지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방해만 될 것이다./145쪽]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체의 모든 책임,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 미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영원한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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