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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북로거]벗과 벗, 그 여인들의 이야기

2011. 8. 15. 09:46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설화와 비밀의 부채 - 8점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밀리언하우스

 
  가진 것이라고는 이쁜 발이 전부였던 아이, 그럼에도 자신의 볼품없던 인생을 그 이쁜 발 하나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 그것이 가능했고 그것이 또한 여인네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에는 전족이라는 오래된 관습이 있었다.   여자 아이의 발을 인형처럼 작게 만들기 위한 더이상 자라지 못하게 여섯 일곱 나이가 되면 발에다가 붕대를 꽁꽁 싸매어 두는 일이다.   전족을 한다는 것은 발가락이 부러지는 고통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을 발휘한 여인이라는 것의 증명이었고, 그 고통을 다 감내할 수 있는 여인이 가지는 순종의 증명이었으며 남편이 될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이기도 했다.  

 

  중매쟁이 왕부인이 찾아왔다.   이쁜 발을 가진 나리에게 전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좋은 혼처를 구해줄 수 있으며 의자매가 아닌 좋은 가문의 라오통을 두어 격을 더 높여놓으면 유리한 상황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리에게 설화라는 라오통이 생기게 되었다.   라오통이란 평생을 함께 가는 친구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서로의 마음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평생의 친구가 바로 라오통인 것이다.   나리와 설화가 라오통이 되던 날, 설화는 나리에게 부채를 보냈다.   그렇게 둘은 그 부챗살에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적어내려갔고, 함께 전족을 시작하게 된다.    

 

  전족을 무사히 마치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리의 동생 삼녀처럼 그 와중에 죽음을 맞는 못다핀 꽃의 어린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한 전족은 결국 가난한 집안, 쓸모없는 여자[남아는 집안에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였지만 여아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나리를 건져내 주게 된다.   왕부인을 통해 좋은 혼처자리가 나선 것이었고, 나리는 통고우에서 부자로 손꼽히는 집안의 며느리가 되기 때문이다.   나리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던 설화를 통해 기품을 배우고, 여자들의 글인 누슈를 배우게 되었고, 설화는 나리를 통해 물을 긷는다거나 청소를 하는 일 등의 살림살이법을 배우게 되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향한 우정을 소중하게 메워갔고 서로의 라오통으로 곁을 지키는 일을 행복해했다.  

 

  나리는 부잣집 며느리가 되었지만 설화는 그러하지 못했다.   좋은 집안이며 한때는 부자였던 설화의 집안이 아편을 하는 아버지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되어 좋은 혼처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가난한 백정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설화, 나리는 설화에게 언제나 진실만을 이야기해줄 것을 강요하였고, 설화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절망들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함 앞에 도리어 멈칫해지는 나리, 이제는 둘의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달라져 있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가진다는 일이 쉽지 않아서였다.   나리는 오로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설화에게 여인의 도리만을 이야기하면서 그 도리에 충실하면 자신처럼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만 이야기한다.   설화에게는 허공을 나니는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결같은 위안일 뿐이고 충고일 뿐인데, 설화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해였는데, 비오는 날 우산은 씌워주어도 함께 그 비를 맞아주지는 못한 나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라오통인 나리와 설화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녀시절에 만나 평생의 친구로 맺어진 나리와 설화 , 함께 자라면서 서로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하고, 태평천국의 난엔 함께 산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땐 나리가 시어머니를 잃기도 하고, 설화는 잔인한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몇 명의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서로의 우정은 빛바래진 적도 있기는 했지만 끊어진 적은 없었는데,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던 날이 오고야 만다.   이 책은 나리의 시선이지만 읽는내내 설화에 대한 연민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나리가 미워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정이란 단순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는 것이다.   나리는 설화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말했지만 설화는 나리가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존재였음을 나리는 알지 못한 듯 하다.   

 

[내가 그녀에게 나의 슬픔에 대해 말했을 때, 그녀는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이 얼마나 빈한한지를 말했을 때, 그녀는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베를 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부지런함이 굶주림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338쪽]   설화가 절망의 진실들을 토로할 때, 나리는 여자의 도리를 말하며 형식적인 위안만을 이야기했다.   나리의 심정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들은 나를 동정하지 않아.   내가 잘 지내지 못할 때는 나를 찾아오기도 해....나는 외롭고 혼자니까.  나는 너처럼 정해진 시간에만 와서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 위로해줄 여자들이 필요해.   내가 옛날에 어땠으며 그래서 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나는 홀로 날고 있는 새가 된 기분이야.  난 짝을 찾을 수가 없어..../343쪽]

 

  나리는 자신이 운명에 대항했던 것처럼 설화 역시 그녀에게 몰아쳐 온 운명에 대항해 싸우기를 바랐다고 말하지만, 설화가 나리에게 원했던 것은 진정한 이해였고 위로였다.   한쌍의 원앙새같던 나리와 설화, 하지만 설화는 언제나 혼자서 하늘을 모진 비바람 속을 뚫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리는 그저 그런 설화에게 여인의 도리에 더 충실하고, 더 부지런을 떨면 운명을 더 좋은 쪽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만 아래에서 외쳐댄 것이고...   지체 놓은 루 부인이 되어 있는 나리, 가난하고 백정의 낮은 신분의 설화, 둘의 우정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나는 바람에 스치운 나뭇가지의 작은 흔들림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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