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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별빛, 그 숭고한 고요함으로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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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별을 먹자

2012. 11. 25. 23:46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우리 별을 먹자 - 8점
나나오 사카키 지음, 한성례 옮김/문학의숲

  낙엽지는 거리의 바스락되는 소리, 외로움을 가득 안고 있을 것만 같은 가을 바람엔 왠지 시가 어울릴 것 같다.

  시를 읽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어린시절엔 멋모르고 읽기도 했는데, 사색이라는 어려움을 이유들며 시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도 같으니 말이다.

 

  이 가을, 시를 만났다.    시인이라는 단어에는 낭만조차 스며져 있는 듯한 느낌에 그 그리움으로라도 가을엔 떠올리게 되는 시를 말이다.   나나오 사카키는 일본의 현대 시인이다.    사실, 이 시인을 만난 것도 처음이고 그의 시와 삶이 하이쿠의 적통이라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하이쿠를 현대화한 일본 시인이라고 하니, 여기서 하이쿠란 일본 고유의 단시형으로 5.7.5의 17음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불교와 에콜로지의 시적 사상의 실천자였다는 그는 평생을 여행자로 살며 유품으로 남긴 것이 고작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니 진짜 시인같은 혹은 시같은 삶을 산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낭만을 즐기면서 그리고 진지하게 삶을 바라보며 그것을 시로 남기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쓸모 없는 말을 할 시간에 책을 읽고, 책을 읽을 시간에 산과 바다와 사막을 걸으며, 그 걸어가는 시간에 노래와 춤을 추고, 춤출 시간에 입 다물고 앉아 있으라는 '헤노헤노모헤노'라는 시가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벌써부터 카리스마가 진중하게 느껴지는 시인이다.  

 

  등산하는 이들에게 왜 산을 오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시인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산은 사람이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진짜 멋진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는 공감이 들기도 했다.    물을 긷고 장작을 옮기고, 곁에서 이야기 하고, 해가 지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하루라고 말하는 시인, 이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니 잔잔한 미소도 지어지고, 수많은 생각의 고리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색의 길 속으로 인도되어지는 일인 것이다.

 

  시인의 시는 자연도 삶도 이야기한다.   시란 그런 것이지 않던가.   시는 삶이어야 하고, 그래서 시인의 목소리 속에서 시의 깊이 속에 파묻혀 각자의 솜씨로 헤엄을 쳐서 빠져 나와야 하는 일, 그 안에서 사색하고 사색하고 사색하면서 시가 엮어지고 독자들은 다시 그 우물 속에서 사색하고, 사색의 연속과 반복은 시를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그리웁게 한다.

  이 가을, 시를 만났다.   그리고 시인을 만났다.   가을이라서 느닷없이 먼지 묻은 세월 속의 그리움이 빠끔이 눈을 들고 일어섰다.   사색한다는 일이 어려워 시를 멀리했지만 또 그 사색이 좋아 시를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 같다.   시인의 시, 그 안에서 사색의 놀이를 헤엄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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