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사막의 별빛, 그 숭고한 고요함으로 빠져들다.
푸른물결

공지사항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우정'에 해당되는 글 1

  1. 2011.11.12 아픈 시대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우정에 울다.

아픈 시대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우정에 울다.

2011. 11. 12. 17:02 | Posted by 물꽃하늘 푸른물결
디데이 - 10점
김병인 지음/열림원


  여기는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이다.   대식과 요이치가 한 사람은 쓰러져 누워 있는 채이고, 한 사람은 그를 끌어안고 있다.   나는 그들, 대식과 요이치를 통해서 한국의 근대사를 만나게 되었고, 찌릿한 몸떨림을 느끼며 하염없이 감출 수 없는 울음을 토해낸다.

 

  책은 대식과 요이치의 일지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디 데이 14년 전의 이야기가 그 시작점을 이루게 된다.   그날은 바로 조선인 대식과 일본인 요이치가 만난 첫 날이기 때문이다.   대식과 요이치는 달리기를 잘 하던 아이들이었지만 대식은 일본의 식민지 하에 있는 억압받는 조선인이었고, 요이치는 제국주의에 완전하게 물들어 있는 일본인 아이였다.   대식은 여동생과 함께 요이치의 아버지인 후지와라 상의 집에 엄마가 식모가 됨으로 정원의 한 귀퉁이 오두막에 들어와 살게 된다.  

 

  대식의 아버지는 항일의병이었다.   가족들 앞에서 일본인 헌병의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친절하다고 해도 일본인의 집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소식이 조선에 전해지면서 조선에도 희망의 불꽃이 조선인들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달리기를 잘 하는 대식 역시 손기정 선수처럼 조선인에게 희망을, 가족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고싶어졌다.   대식의 소망은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고 그래서 일본인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신세를 면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삶의 목표가 된 대식이다.

 

  요이치와 대식은 서로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관계이다.   절대 서로의 친구이기를 원하지 않는 사이, 서로에 대한 경쟁의 견제가 심하다.   요이치 역시 대식처럼 달리기를 한다.   이번 올림픽에 가기 위한 선수를 뽑는 달리기 대회에서 일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요이치의 유일한 경쟁자라면 대식 뿐이다.    달리기 대회날, 요이치와 대식의 엎치락뒤치락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달리기는 결국 대식의 우승으로 결말이 났다.   꿈에도 바라던 올림픽에 나가게 된 대식, 하지만 대식은 퇴학을 당하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되는 대식에게 교장은 전쟁에 나가면 다시 학생으로 받아주고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대식은 일본을 위한 전쟁따위에는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군인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요이치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일본제국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아깝지 않고, 지금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것이 젊은이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939년 대식과 요이치는 노몬한 지역에 와 있다.   같은 부대에 배속을 받아 한 내무반에 있는 대식과 요이치,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대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 중에 소련의 포로가 되어 굴라크 갱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조선인 대식과 요이치는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가 소련의 포로가 되고, 소련에서 탈출하여 독일군에 합류했다가 드디어 1944년 노르망디 해변에서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날을 받아놓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잠수함이 오기로 한 바로 전날, 하필이면 미군이 노르망디에 입성을 했고, 대식과 요이치는 또 다시 전쟁의 포화 속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조선으로 돌아갈 날을 목전에 두고서 말이다....

 

  이 책은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영화가 몹시도 보고프다.   그 큰 스크린을 앞에 두고 대식과 요이치가 살았던 그 아픈 시대의 시간들을 만나며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내어 엉엉, 울고싶은 것이다.   대식과 요이치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함께 한 힘겨움의 시간들 속에서 서로의 친구가 된다.   험난한 시간을 함께 보낸 그들, 1944년 노르망디 그 해변에서 대식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요이치라는 존재였고, 요이치 역시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는 대식 밖에 없었다.   그들은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일제 강점기 속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날의 대식과 요이치에게는 더이상 조선도 일본도 없었다.   오로지 사람과 사람만이 존재한 것이다.   이데올로기 따위는 없이 휴머니즘만이 그 하늘 아래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재미나게 그리고 아프게 책을 읽었다.   제국주의에 완벽하게 물들어 있는 일본인 요이치가 싫지 않았던 것은 그 아이가 살아 숨 쉬고 있던 세상의 우물은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제국의 아이였던 요이치였는데도, 조선인을 낮은 존재로 바라보는 그였는데도, 그런 그는 시대가 낳은 모습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요이치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잘못된 이념 속에 살아가는 그 아이가 그 시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결국 요이치는 신이라고 믿었던 천황에 대한 그의 믿음이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시대가 낳은 아픈 아이들이었다.   대식과 요이치 때문에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시대를 산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옳지 않은 이념과 믿음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하필이면 그곳에 대식과 요이치가 있었고, 나는 그들때문에 소리내어 울었다. 

  

 

  

Comment

이전 1 다음